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비 브라운 (문단 편집) === 소개 === [[New Edition|뉴 에디션]]의 멤버로써 어린 시절에 가요계에 데뷔했다. 뉴 에디션 시절부터 춤으로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마이클 잭슨]]'''이 뉴 에디션 멤버들과 이 바비 브라운을 자신의 저택에 초대하여 '''춤을 배웠다고 할 정도로''' 당대 모든 가수들을 통틀어 가장 춤을 잘 추는 사람 중 하나였다. 동시에 노래도 상당히 고평가받았던 인물 중 하나인데, 이로 인하여 1980년대를 대표하는 댄스 가수로 자주 꼽혔고 [[폴라 압둘]]과 [[자넷 잭슨]]의 인기에 대항 가능한 흔치 않은 가수로 [[밀리 바닐리]]와 함께 꼽혔다.[* 밀리 바닐리는 립싱크 가수이므로 사실상 바비 브라운이 거의 인기와 실력 모두 80년대 말 기준으로 가장 뛰어난 가수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자넷 잭슨]], [[폴라 압둘]]과 더불어 '''[[컨템퍼러리 R&B|R&B]]와 [[힙합 음악|힙합]]을 합친 [[뉴 잭 스윙]] 음악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미국 대중음악의 아이콘'''이었다. 이 분야의 거장인 [[베이비페이스]], [[테디 라일리]]와 함께 1980~90년대 초반의 음악시장을 선도하였다. 특히 데뷔앨범 '''[[Don't Be Cruel(바비 브라운의 음반)|Don't Be Cruel]]'''은 역대 가장 히트친 데뷔 앨범을 거론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초메가히트 앨범으로[* 1989년 [[빌보드 200]] 연말 차트 1위] 대부분의 곡들이 히트쳤으며, 대표곡인 '''[[My Prerogative]]'''는 '''1980년대 최고의 히트곡'''으로 자주 꼽힌다. 데뷔 앨범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 그 다음 앨범들로 가면 갈수록 흥행이 떨어졌지만, 1990년대 초까지 큰 인기를 가진 가수였다.[* 1992년 앨범인 Bobby의 수록곡 One More Night는 School Boy Crush의 리프를 샘플링하였는데, 80년대 힙합 팬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에릭 B&라킴'''의 대표곡 중 하나인 Microphone Fiend가 바로 그 노래를 샘플링하였다.] 국내에서 바비브라운의 영향을 받은 가수로는 '[[현진영]]과 와와'가 있다. 소위 말하는 흑인 특유의 힘이 넘칠듯한 오버스러운 댄스~~일명 깝류~~는 바비 브라운이 원조라고 할 수 있다. 깝침이 과도하여 무대를 보면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넘쳐흐른다. 무대에서는 자주 객석에 드나들며 관객 앞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얼굴을 들이대 팬서비스를 해주는데 당시 빈약했던 관중과의 소통 등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다만 본인의 트레이드마크인 토끼춤이 워낙 체력적으로 힘든 춤이라 립싱크를 많이 사용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로 마약 중독으로 인하여 옛날의 미성이 사라졌으며 목소리가 아주 걸걸하게 변하게 되었다. 동시에 외모가 많이 변해서 지금은 후덕한 아저씨이다. "[[Humpin' Around]]"부터는 토끼춤이 아닌 직접 개발한 파워댄스로 탈바꿈하였다. 바비 브라운을 대놓고 벤치마킹한 [[현진영]] 역시[* 슬픈 마네킹 무대를 보면 옷부터 댄스까지 전부 바비 브라운을 따라하였다.] 오래 가지 못해 마약에 손을 대어 인기와 인생을 말아먹었다. 덤으로 휘트니 휴스턴까지... 이것이 진짜 [[평행이론]]이 아닐지.. '''뉴 잭 스윙 시대의 대명사'''로 꼽히는 가수이며 1980년대 한국 댄스가수들의 롤모델이었지만 1990년대 들어 한국에서는 [[서태지]]의 출현으로 인해 인기가 바랜 면이 있다. 그리고는 본인의 사생활이 점점 막장화되면서 자연스럽게 본토에서도 잊혀졌다. 한때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며 빌보드 올타임 아티스트 순위에서도 볼 수 있듯 [[에드 시런]]이나 [[더 위켄드]] 등의 기라성같은 가수들의 순위와 비슷한데,[* 단 지금은 이 둘은 차트에서 다른 곡들을 많이 올렸으므로 지금 순위는 이들보다 낮다.] 1980년대 말 당시 바비 브라운의 임팩트는 엄청났다.[* 특히나 [[My Prerogative]]는 198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어마어마한 초메가히트곡이었고, 나아가 그 앨범인 [[Don't Be Cruel(바비 브라운의 음반)|Don't Be Cruel]]은 1980년대 말 최고로 성공한 앨범 중 하나였다.] [[폴라 압둘]]과 더불어 1980년대 말 짧은 인기를 누리고 인기가 하락한 케이스로 꼽히지만 아메리칸 아이돌 심사위원으로 젊은 세대에게 인지도가 아주 높고 춤 실력도 여전한 폴라 압둘과 달리 바비 브라운은 사생활 문제+중년기부터 시작된 비만으로 인하여 젊은 시절의 포스를 내고 있지는 못한다. 그래도 여전히 꾸준히 앨범을 내고 있기는 하지만 Don't Be Cruel 시절과는 목소리가 많이 다르다. 나이가 들어서 살이 쪄서 그런지 춤을 추지는 않지만 반대로 나이가 들면서 공연에서 라이브를 하게 되었다. 이러한 점으로 인하여 80~90년대 올드팬들에게는 잘 알려져있지만 반대로 이후 세대에게는 거의 인지도가 낮은 가수이다. 그러나 바비 브라운이 뉴 잭 스윙의 대표주자였던 것만큼은 사실이며 빌보드 올타임 순위에서도 볼 수 있듯 당시 미국 대중음악계를 휩쓴 인물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